생명의 양식

[이동수 목사 설교] 예수님의 섬김

100y_health 2025. 5. 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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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25년 1월 26일 주일오전예배

설교자 : 이동수 목사 (대구성서침례교회)

본   문 : 요한복음 13:1-5, 24-25

(요한복음 13:1~5) (1) 이제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자기 때가 이르러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줄 아시고 세상에 있던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에 이제 마귀가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겨주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갈 것을 아시고 (4)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몸에 두르시며 (5) 그 뒤에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몸에 두른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14~15) (14) 그런즉 너희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마땅하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내가 너희에게 본보기를 주었느니라.

 

2025년을 시작하며 조금이라도 더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표어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찾아오셨는지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910에서는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2028에서는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내어주셔서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예수님이 사람을 섬기러 오셨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 화가인 레오나르드 다빈치라는 화가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유명한 그림입니다.

다빈치는 그의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의 요청에 따라 1495년부터 1498년 사이에 한 건물의 벽에 그렸는데, 가로 8.8m, 세로 4.6m에 이르는 거대한 작품입니다. 스포르차는 건축 중인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교회를 자기 가문의 묘지로 꾸미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교회의 회랑 옆에 공간만 영안실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영안실의 벽을 장식하기 위해 다빈치에게 이 그림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교회가 이 공간을 교회 식당으로 사용하면서 <최후의 만찬>은 식당 벽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기 전날 밤, 열두 제자와 함께 마지막으로 유월절 식사를 하는 장면을 묘사했는데,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셨을 때 제자들이 당황하는 순간을 그렸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22을 보면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던 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기를 배신하여 팔아넘길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식사를 나누던 중에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여 넘겨줄 터인데 나는 정해진 대로 죽겠지만, 나를 판 그 사람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21~23) (21) 그러나, 보라, 나를 배반하여 넘기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2) 진실로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가거니와 그를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예수님의 말씀에 당황한 제자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누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라고 술렁였습니다.

(누가복음 22:23) 그들이 자기들 중에 이런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고 자기들끼리 묻기 시작하더라.

 

그 저녁에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배신당하고 붙잡히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극심한 고통을 당할 것을 생각하시며 마음이 매우 슬프고 힘드셨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637절과 38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만찬을 드신 후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는데 그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37~38)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시면서 비로소 슬퍼하시며 몹시 괴로워하시더라. (38) 이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 너무나 슬프고 무거운 마음이셨을 텐데 그 자리에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제자들 사이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누가 예수님의 후계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말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누가복음 22:24) 그분께서 자기들 중의 누구를 가장 큰 자로 여기실까 하는 일로 그들 가운데 또한 다툼이 있으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스승이신 예수님은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죽음을 앞두고 마음이 슬프고 괴로운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고 난 후에 누가 윗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다투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이었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제가 예수님이었다면 가룟 유다를 향해 내가 너를 믿고 제자로 삼고 지금까지 가르치고 돌봐주었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배신할 수 있느냐? 나를 팔아넘기기로 약속까지 해 놓고 어떻게 뻔뻔스럽게 여기 와서 앉아 있느냐? 정말 실망이다. 꼴도 보기 싫으니 썩 꺼져라.”라고 내쫓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서도 내가 너희에게 내가 붙잡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라고 세 번이나 얘기하지 않았느냐? 오늘도 내가 너희에게 오늘 밤에 내가 붙잡히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내 마음은 너무 슬프고 괴롭고 힘든데. 너희들은 내 앞에서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지 말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러고도 너희가 내 제자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소리치며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반응은 좀 달랐습니다.

그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백성들 위에 군림하여 권세를 부리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고 큰 사람이지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으니 너희 가운데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사람이 큰 자니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22:25~26) (2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방인들의 왕들은 그들에게 주인 된 권리를 행사하며 또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은 은인이라 불리나 (26) 너희는 그리하지 말지니 너희 가운데 가장 큰 자는 어린 자와 같고 으뜸인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그 일 후에 일어난 일이 바로 본문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예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받은 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수건으로 닦아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4~5) (4)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몸에 두르시며 (5) 그 뒤에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몸에 두른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시니라.

 

예수님은 대제사장들에게 돈을 받고 자기를 팔아넘기기로 약속하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뻔뻔스럽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가룟 유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붙잡힐 때 제자들이 자기를 버리고 도망칠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그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또한 그 밤에 죽는 것이 두려워 세 번이나 자기를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아시면서도 베드로의 발도 씻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주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 부르는데 그 말이 옳다. 너희의 선생이며 주인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내가 본보기를 보여 주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3~15) (13) 너희가 나를 선생과 주라 부르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니라. (14) 그런즉 너희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마땅하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내가 너희에게 본보기를 주었느니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하는지 섬김에 대한 본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섬김을 말할 때 종종 우리가 섬길 사람은 우리가 선택해도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섬길만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섬기면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 예를 들면 가룟 유다처럼 우리는 배신하고 피해를 준 사람, 베드로처럼 믿어달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모른척하여 상처를 준 사람, 제자들처럼 친한 척하다가 형편이 어려워지고 힘든 일이 생겨 도움이 필요할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등을 돌라고 외면한 사람들은 섬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섬김은 섬김의 대상을 선택하는 섬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배신하고 팔아넘긴 제자 유다, 자기를 모른다고 부인할 제자 베드로, 자기가 붙잡힐 때 버리고 도망칠 제자들의 발까지 씻기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섬김의 대상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했습니까?

어쩌면 나는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넘긴 적도 없고,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 한 일도 없으니 그들보다는 좀 났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디ㅏ.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 마귀의 백성으로 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했던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죄로 더럽혀진 죄인으로 절대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서 영원히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더럽고 추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결박당한 채 붙잡히시고 주먹질과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사형의 벌을 받아주시며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며 섬겨주셔서 저와 여러분들이 죄 사함을 얻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기억합시다.

(요한복음 13:14~15) (14) 그런즉 너희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마땅하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내가 너희에게 본보기를 주었느니라.

 

성도 여러분, 올 한 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삽시다.

살다가 섬기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 줄 것이다.’라고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배신하고 등을 돌려 속상할 때, 나는 마음이 너무나 괴롭고 힘든데,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들이 외면하고 등을 돌려 상처가 될 때, 그때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발을 씻기셨던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합시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원수도 사랑하고 섬기며, 우리 주님의 사랑을 실천합시다.

2025년 우리 곁의 모든 사람을 섬김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과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선명하게 나타내 보여 주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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